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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역사적 의의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또 중세 전쟁때에 사용되었던 포들 모두가 이런 중국 송나라때 금나라와의 경쟁에서 개발된 신무기였다.
당시 송나라는 기습전에 강한 기마민족의 습격에 방어하기 위해서
신무기 개발을 하게 되었는데 도교의 연단술사들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화약은 이후 전장에서 이용되기 시작했다.
최무선은 이원을 찾아가
재료만을 받아오게 되는데, 만드는 법이 도제식으로 내려오는 터라 기록을 얻을 수는 없었다.
최무선은 원의 염초기술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므로,
1376년(우왕2년) 원나라 이원으로부터 염초의 제조법을 배운다.
대나무를 닮은 화포의 모양
그리고, 최무선은 화포도 개발한다.
최초의 화포의 모양은 대나무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최초의 화포가 대나무통에 화약을 장전에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화포와 진포대첩
근접전투에 강한 왜구 그리고
왜구가 500척을 이끌고 진포(서천, 군산 지역)에서 약탈을 벌인다. 대략 배의 크기에 따라 40, 30, 20명이라고 하니 30명 평균으로 잡아도 15000명의 왜구가 침입한 것이다.
EBS에서는 5만여명으로 묘사되어 있다.
설계도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병기로 미항공우주국에서 인정받은 주화(走火).
배를 잃어버린 왜구의 이후 동선
명나라 해적과 연합하여 무역이 아니면 약탈을 행한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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