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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5월 22일 업체에 들렀다가, 시간이 많이 지쳐가 되었다. 그래서 광화문으로 차를 타러 나갔다. 그때 밝은 빛의 탑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광화문에서는 가끔 그런 행사를 한다. 문화행사 홍보라 생각하고 셔터를 눌렀다. 

   광화문과의 셀카.... 후 6월 21일 오늘 이 장면은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이었음을 알았다. 

 

[포토]불 밝힌 미륵사지 석탑등

불기 2561년의 부처님 오신 날을 21일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미륵사지 석탑등 점등식이 열리고 있다. 이날 점등된 석탑등은 국보 제11호의 미륵사지 석탑을 원형으로 삼아 제작돼

www.asiae.co.kr

   부처님을 기념하는 연등으로 선택된 저 탑은 무엇일까? 우리에겐 참 낯선 탑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래의 모습으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시멘트를 제거하는 데는 약품처리나 치과용 드릴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탑 주변에 철골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탑의 꼭대기까지 흙을 채워 넣어 탑을 완전히 덮어 씌운다. 그리곤 마치 탑�

m.chkorea.news

익숙하다. 쓰러져가는 석탑을 받치는 시멘트 구조물... 1915년 일제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덧대서 훼손을 시켰다.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년중앙] 일제 때 콘크리트 떼고 우뚝 서는 미륵사지 석탑

전라북도 익산에 가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이 있습니다.이 미륵사지 석탑은 지난해 12월 16일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가며 화제가 되었습��

news.joins.com

   하지만 20년간의 보수공사 끝에 그 탑은 보존되어 다시 개방되었다. 그리고 그 온전한 모습은 동탑이 발견되면서 아래와 같이 9층 석탑임이 확인되었고, 그래서 가설이 확정되어 알려졌다.

   미륵사는 639년 무왕시대에 창건되었다. 

 

삼남일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칼럼, 스포츠 기사 제공.

www.samnamilbo.com

   아직은 고증이 부족하지만 동탑은 미륵사직 석탑의 체감적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익산 미륵사지석탑, 대제국, 백제를 말하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익산가는 답사차안 정암 박사 도상지리답사 꿀맛익산 왕궁리 오층탑 백제사찰 위용 말없이 웅변복원개방 앞둔 익산미륵사지석탑, 대백제 위용과시 지난 ...

www.koreahiti.com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 익산 미륵사 ...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 | 연합뉴스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 박상현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19-04-30 06:00)

www.yna.co.kr

   미륵사와 미륵사지에 얽힌 설화 

   미륵은 미래에 나타날 부처님의 의미이고,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은 습지에 기초를 다져 절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사는 신라의 황룡사와 경쟁관계에 있어서, 황룡사와 더 크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래:31분부터)

망한 나라이지만 우리민족의 국가이며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 백제...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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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종영된 드라마 만파식적과 당간지주의 기원이 된 통일신라 시대의 복원도

 

   만파식적은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682년(신문왕 2)에 해관(海官)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수성(守城)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부산(浮山)은 거북 머리 같았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평온해져서, 만파식적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 뒤 효소왕 때 이적(異蹟)이 거듭 일어나,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하였다.'

[출처] encykorea.aks.ac.kr 

 

만파식적설화(萬波息笛說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682년(신문왕 2)에 해관(海官)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海��

encykorea.aks.ac.kr

   당간지주는 미륵의 세계로 안내하는 기둥이며 주로 통일신라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발견된다. 

 

당간지주(幢竿支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축개념용어  당(幢)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   

encykorea.aks.ac.kr

   미륵사지 석탑도 이런 당간지주를 보유하고 있다. 

 

익산가볼만한곳 '미륵사지' :: 석탑과 당간지주.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우리나라 최고, 최대인 미륵사지 석탑. 백제 최대 사찰인 미륵사백제역사유적지구의 마지막 볼거리인 익산...

blog.naver.com

2020.06.20

나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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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임진왜란이 우리가 진 전쟁으로 인식하고 한반도의 일부가 다른 나라에 한순간 정복당했던 수치심을 여지껏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임진왜란에 패전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며, 이후에 발생한 병자호란과는 다른 성격의 전쟁이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임진왜란과 매우 관련성이 높은 전쟁이다. 

대한민국 vs. 스위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는 매번 강조되고 있지만,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도 영세중립국이 되었어도 한참 되었을만한 국가이다.

[출처] https://mapofeurope.com/wp-content/uploads/2013/11/topographical-map-of-Europe.jpg

   몽고가 그저 군사력과 지형을 이용해서 나라의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강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어떻게 중립국이 됐을까?

스위스군의 총병력은 12만 명에 즉시 동원 가능 예비군도 약 10만 명에 달한다. 인구 800만, 우리나라의 반 정도 되는 작은 국토에 그것도 주변에 위협을 줄 만한 잠재 적국도 많지 않은 '영세중립�

dailytalk.tistory.com

   스위스의 위치를 보면,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 1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신성로마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로마의 이탈리아 등으로 둘러 쌓여져 있다.

   우리나라도 근세 최강국 중국, 냉전시대의 대제국 소련, 2차대전 종주국 일본, 그리고 현대 세계 최강국 미국에 둘러쌓여져 있다. 절대 지지 않는다.

 

임진왜란의 정체성

   우리가 흔히 부르는 임진왜란은 마치 독일과 프랑스쯤이거나 로마와 나폴레옹이 붙은 전투 정도급은 넘어서는 전쟁이었다. 내가 보는 관점은 십자군과 오스만제국이 붙은 정도급은 되는 전쟁이었다고 본다.

 16세기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지도를 들여다보면,

[출처] https://bit.ly/2Z7CnvJ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 곁에 오스만의 후예... 터키제국이 있다. 

   여기에 명,조선,일본의 지도를 대입하면... 현재 독일, 폴란드 혹은 이탈리아 급 나라인 일본(왜)이 명분상 영국수준의 국력을 가진 한국(조선)에 쳐들어가서 유럽대륙과 중동지역을 포괄하고도 남을 과거 로마수준의 국력을 가진 중국(명나라)에 쳐들어갈 길을 내달라고 한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조선해군과 로마해군

   그런 일본국과의 전쟁을 치른 조선은 당대 최고의 해군력을 가진 국가였음에 틀림없다. 예로 조선은 일본국의 치고 빠지는 빠른 배에 대비하여 크고 높은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려의 진포해전을 전후하여 화포로 무장한 중장비 해군, 최근으로 치면 토마호크로 무장한 이지스함 정도 급의 해군함을 여러척 보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총보다는 정밀타격이 어려웠던 당시 화포로 근접전을 유도하여 화포로 부수고 판옥선으로 돌파하여 배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전법은 그야말로 전력을 100%살린 탁월한 이순신의 전법이었다.

 

[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거북선과 까마귀 - 조선과 로마 해군 | World of Warships

"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이번 편은 임진왜란과 포에니 전쟁을 통해 조선 해군과 로마 해군의 공통점을 살펴봅니다.

worldofwarships.asia

영국해군

   세계적 해군사에서 5대 해전중에 하나인 트라팔가 해전을 보더라도 2000여 척의 배와 90,000명의 나폴레옹의 대군을 영국은 막아냈다.

 

충무공 이순신

트라팔가르 해전은 나폴레옹전쟁시대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해전이다. 서유럽 대부분을 재패한 나폴레옹은 그의 제국을 동쪽으로 더 넓히고, 영국을 정복하고자 했으나, 이는 트라팔가에서 넬

www.gyeongnam.go.kr

조선해군

   조선은 722척으로 총병력 172,400명의 군대로 맞서 싸웠으며 286,000의 명나라 군대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명의 군대는 그야말로 별로 싸우지 않고 주둔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한 상황이 크고, 대부분은 조선군이 의병과 게릴라전으로 막아냈다. 

   한편 일본은 2000척에 달하는 일본수군 및 탑승한 245000(임진왜란) + 298000(정유재란) 군대를 맞서 싸웠다. 

 

임진왜란 군대 목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일본, 명나라의 당시 출전했던 군대들의 목록이다.[1] 총병력: 17만 2400명[2] 종류 규정 배치수 대맹

ko.wikipedia.org

   육군의 전력 비대칭과는 달리 수군의 경우는 왜선과의 대비해서 절대 우위의 판옥선을 가지고 있었고, 화포도 대량으로 갖고 있었으며, 조총과는 댈리 재래식 무기를 갖고 있었지만 다양한 총통무기를 병행함으로서 왜군들의 대응에 전략적으로 다양한 옵션을 가질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90000만 대군이라는데 우리는 그의 3~4배의 군대를 막아냈던 것이다. 얼마나 압도적인 스케일인가?

   그런 세계대전급 전쟁을 치르면서 조선은 승리를 했던 것이다. 조선이 공세적으로 일본정복에 신경을 썼었더라면 일본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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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봤습니다. 

 

일본, 패망직전 흥남 앞바다서 원폭 실험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0742 일본, 패망직전 흥남 앞바다서 원폭 실험했다 12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차대

blog.daum.net

   그리고 위험에 많이 노출된 나라는 핵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항상 외침이나 외교, 국방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핵무기 개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대한민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설명이다. 대한민국은 과거에도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었다. 1970년 7월 월리엄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이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국 회의에서 최규하 외무장관에게 통고한 "주한미군 2만명 철수"가 발단이 됐다.[1] 2004년 8월 대한민국은 IAEA에 기밀을 유지하던 민감한 원자력 연구 프로그램을 통보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안전 조약에 따라

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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