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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스베르크를 지나던 제6기갑사단은 줄무니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부헨발트라는 지역이였다. 

히틀러의 사상

   1차 세계대전에서의 진 이유는 백인 러시아인들이 설명해준 '볼셰비키 유태인들이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켰고, 그런 위험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한다. 유태인들이 우리를 배신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며, 그들이 독일에서도 혁명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활용했다. 

   반볼셰비키 정서를 활용해서 지지를 얻었다. 우리를 좀 먹는 외국세력을 몰아내자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이것을 정부의 전략으로 잡았다. 

   사람들을 수용소에 넣고 사고방식을 바꿔서 독일시민으로 바꿔서 독일에 기여하게 한다. 초기엔 이 수용소가 정적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사용이 된다. 힌덴부르그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때 부터 총통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독일인이 뛰어난 인종이라는 사상을 주입한다. 

   그러나 백인우월주의는 유럽에서도 팽배했고, 미국도 노예제도를 합리화 하는 방법으로 사용했고, 히틀러도 하인리히 힘러를 사용해서 독일 문화의 순수성을 지키고 우월주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슬라브, 동유럽인들을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했다. 집시, 동성애자, 마약주의자 등을 수용소에 보내기 시작했다. 

   조세프 괴벨스를 선전부 장관으로 지정하여 유태인을 다른 표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미션을 주었다. 

 

   "대중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대중들은 간단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1채널만 나오는 라디오를 팔았다. 그리고 이 국영방송 채널을 통해서 선전활동을 했다. 

1일 불매운동을 하고, 학생들이 유태인이 쓴 책을 불태웠다. 

   그리고는 유전적으로 배척되어야 하는 인종들을 지정하였다. 

   유태인 한명이 직업을 잃으면 독일인 한명이 직업을 었었기 때문에, 이 사상을 사람들은 지지하기 시작했다. 

유태인 탄압 및 인종청소

수정의날 Crystal Night

   전쟁전에는 모든 재산을 넘기면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대공황중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주는데 너그럽지 않았다. 수정의날 3000명의 유태인 남성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폴란드 침공

   유태인의 탄압에 대해서 세계의 반응이 없자 영토확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슬라브인, 러시아인, 폴란드인의 영토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다.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안락사 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부커발트의 소장의 아내 일제 코프

   사람 가죽이 가구가 되거나 책표지가 되거나 하였다. 슬리퍼, 램프 갓 등... 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특무부대

   하인리히 힘러는 특수 준군사조직을 만들어서 특무부대는 유태인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나치의 처벌이 무죄가 되다

   나치의 경우도 결국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나치의 사람들 상당수가 기업가, 과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UN의 자국자료 열람이 금지되었다. 그들은 감형을 받았고 나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었다. 

   소련의 위험이 그 이유에 들었다. 

   하지만 수용소 간부나, 경비병들은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게슈타포도 과거를 묻고 미래로 가야한다는 이유로 모두 죄를 묻지 않았다.  

나의 의견

   아마도 우리 민족이 뭉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은 쪽발이라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익이 될 것이며 민족을 하나로 단합시킬 것이다. 바로 그런 단어가 유태인이라는 단어라 생각된다.

   지금은 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는 자가 친일파나 나베나 그런 단어를 사용해서 경멸하곤 한다. 나중에 우리나라가 커지면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 그런 말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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