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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소불가침 조약에 의해서 소련의 묵인아래 무너져가는 민주주의 국가들을 지켜보던, 스탈린은 그 결과가 결코 서부, 중부유럽에 한정지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챈다.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독일군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면서 독일과 소련은 전쟁을 시작한다. 독일은 동유럽의 철강과 유전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소련과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도 전격전의 교본처럼 

   공중전

   탱크

   포병

   보병

이런 순으로 진행하였다.   

   4-6주면 끝날 전쟁이 모스크바에서 진격이 끝이 났다. 유전지역을 얻어야 하는 독일군으로서는 스탈린그라드를 좋은 먹이감으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스탈린이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고, 총한자루도 없이 앞서 죽은 동지의 총을 손에 쥐고 달려가는 병사들이 소련의 병사들이었다. 

 

[실화] 세이빙 레닌그라드 : saving leningrad

 피난통에 그려지는 인간군상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드러나는 그런 영화다. 아들을 살리려 피난선에 태우는 대위, 사람도 싣기 힘든 피난선에 피아노를 싣는 인사, 권력을 이용해 자동차를 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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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반격 11월 19일 

   100만의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추위에 지친 나치군에 강력한 반격을 9월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마스키로프카(천왕성 작전)이 완전히 먹혔다.  

   제 6군의 측면이 뚫렸다. 대부분 독일군이 아닌 연맹군들이었다.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에서 차출된 군인이었다는 점이며, 독일군의 전격적을 모방해서 치고 들어갔다. 4일만에 칼라치 부근에서 조인하고 나서는 독일군 병력을 둘러쌓았다. 모든 작전이 야간에 이루어졌고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이 작전속에서 첫 기갑군, 신형전투기를 도입했다. 완전히 재무장을 했다. 야크전투기를 몰았다. 

독일군 장교 파울루스의 충성

   히틀러의 명령은 지켜라였다. 파울로스는 좋은 참모이고 충성가 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겨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주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30만 독일군이 필요로하는 보급은 괴링의 공군이 해내지 못했다. 러시아 공군은 공중봉쇄를 실시하였다. 

   겨울폭풍작전을 위해서 남쪽에서 치고 올라왔다. 발터 폰 자이틀리스는 떠나자고 했지만... 파울루스는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잃은 것인 셈이다. 

   원수로 진급이 되었던 파울루스는 추이코프(주코프)에게 항복을 했다. 포로로 생존한 91,000명중, 5000명 정도가 살아서 돌아왔다. 

   반면 러시아군도 100만명 가까이 죽었다. 

나의 해석

   이 전쟁은 그야말로 1차 세계대전에서의 참호전 만큼이나 참혹은 양국가의 교차상태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소모전이었고 시민들을 상대로 벌어진 야만적인 전쟁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을 치르고 독일군은 시간이 흘러 겨울을 맞이 했고, 병참이 길어지면서 보급이 부족해졌고, 공군력이 강했지만 서부전선의 문제점도 지속되었기에 독일군은 결국 항복하였다.  게다가 이제는 소련군이 기만전술로 모든 현대식 무기를 스탈린그라드 주변으로 밀집시켰고, 한방에 양쪽에서 몰아가는 천왕성 작전을 시행하였다.

   이 결과로 2차 대전의 승기는 소련으로 넘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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