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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타고 유학의 길을 간접 체험했던 97년 3월 나는 긴 여행을 했다. 지금이야 아무때나 맘만 먹으면 갔던 곳이지만, 당시만 해도 일부 해외주재원쯤이 아니만 갈 일이 없는 그런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의 이름은 슈트트가르트, 이름도 거칠어서 동구권 도시 이름쯤으로 불리는 곳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친 이름의 도시이고, 이곳은 2차대전 때에 하도 폭격을 당해서 마을을 완전히 신도시처럼 개발을 했다는 그곳이다. 그래서 구도심은 거의 없고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뿐이었다. 

   하우프트반호프(HAUPTBAHNHOF)에서 내려서 코닉스트라쎄(KonigStrasse)를 내려가는 길에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있었고, 그 백화점 근처에 가장 큰 레코드가게(요새 이름으로 CD가게?)가 있었다. 물론 친구들에게 물어서 찾아갔지만... 

 

 하우프트반호프(HAUPTBAHNHOF)

 

코닉스트라쎼는 왕의 거리라는 뜻으로 기억하는데 정말 많은 상점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명동쯤? 

 

Radioaktivität gemessen: Königstraße strahlt, aber nur ein wenig

Wie hoch ist die Radioaktivität in der Königstraße? Amtliche Strahlenschützer haben das jetzt gemessen. Die Dosis ist mit 0,17 bis 0,34 Mikrosievert pro Stunde so minimal, dass weder für Passanten noch für die Mitarbeiter in den anliegenden Geschäft

www.stuttgarter-nachrichten.de

   늘 그렇듯, 혼자다니면서 잘 다니던 습관은 음악CD나 레코드 가게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그 때만큼은 나의 온갖 사치를 다 부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계획적으로 짜놓은 모든 소비계획은 CD를 만나면 모두 원점에서 포기가 된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누군가 연구를 해주었으면.. ㅎ) 

   그중 한군데 였던 라르케(정확한 발음은 나도 잘 모른다. 그렇게 알려줬다. 내게)였다. 영어로 요새 나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듣는 음악은 뭐냐? 이렇게 물었더니 그들은 Techno음악을 알려주었다. 한참을 듣던 나는.... 음. 이건 내 과가 아니군.. 하고 다른 음악을 뒤졌었던 기억이 난다.

 

Legendäre Läden in Stuttgart: Die Lerche singt nicht mehr

Unter dem Druck des harten Wettbewerbs müssen immer mehr Traditionsgeschäfte in der City schließen. Haufler und Hirrlinger sind die aktuellen Beispiele. Das Stuttgart-Album erinnert an legendäre Läden wie Lerche, Barth, Entress und Govi – an Läden,

www.stuttgarter-nachrichten.de

   슈트트가르트의 온갖 CD샵은 다 뒤지고 다녔고, 길가다가 LP가게가 있었어도 뒤지고 다녔다. 내가 한국에서 못산 음악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 곳에서 못샀던 음반들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실버마운틴(Silver Mountain)이었고, 그 다음이 독일출신의 Progressive Rock그룹 Klaus Schulze나 Tangerline Dream도 있었지만... 사실 이들의 앨범은 널려있었다. ㅋ 

   독일에서 사야할 미션이 될만한 음반은 'Art of Noise'였다. 이름 만큼이나 이들의 음악은 예술성이 농후한 음악이었고 아직도 설치 미술, 현대 미술 이런 전시회에 사용하더라도 무방한 음악을 만들어냈었다. 당시 독일의 음반 제작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지금들어도 마스터링이나 잡음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이 그룹은 잡음(noise)를 음악에 접목시켜서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그룹이다. 

   짧고 간단히 소개한 아트오브노이즈의 소개, Yes의 90125에도 참여를 했었다니 ... ㅋㅋ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90125는 Yes의 상업적 성공음악 'Owner of the lonely Heart'의 음악이 실린 음반이다. 

 

Art Of Noise - Kiss

Art Of Noise - Kiss 아트 오브 노이즈 (Art Of Noise) : 1982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 앤 더들리 (Anne Dudley, 키보드) : 1956년 5월 7일 영국 채텀(Chatham) 출생 제이제이 젝셜릭 (J.J. Jeczalik, 키보드) : 1..

wivern.tistory.com

   그리고는 이런 음악들이 너무 맘에 들어서, Art of Noise의 전체 앨범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미쳤다. CD가 비싸기도 했지만 가격과 상관없이 온 Stuttgart를 다 뒤지고 다녔으니, 아마 독일말 못하는 사람이 와서 그냥 Art of Noise라고 말만 하고 음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곡

라이브

나이들어 라이브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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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6.25참전은 미국의 용인하에 이루어졌다.

 

[류순열 칼럼] 일본 전범은 어떻게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나

일본은 전범국이다. 식민지 전쟁으로 인류에게 막대한 고통을 준 범죄국가다. 1945년 패망후 전쟁할 수 없는 나라가 된 이유다. 그래서 일본이 지난 70여

ww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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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 오브 노 리턴은 전쟁의 막바지에 전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독일군의 운명을 그렸다. 사랑과 배신, 전쟁의 잔인성에 대해서도 논하였고, 다양한 군상들이 나타난다. 

   러시아군과 동구권출신의 여자들간의 민족간의 갈등도 드러나고, 남녀간의 갈등속에서 이별도 드러난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주제를 놓고서 인간들의 심리적 갈등구조를 작은 규모의 소대원들 속에서 그려낸 그런 저예산 영화라고 생각된다. 

   포인트 오브 노 리턴은 멈출수도 피할수도 없는 그 지점을 말한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지점에 살고 있나 보다.

 

POINT OF NO RETURN | Cambridge English Dictionary에서의 의미

point of no return 의미, 정의, point of no return의 정의: 1. the stage at which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top what you are doing and when its effects…. 자세히 알아보기.

dictionary.cambridge.org

1945: 포인트 오브 노 리턴(2019) 

The Point of No Return 

평점 03 . 3

전쟁

영국

2020.06.24 개봉 85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릭 로버츠 

주연 조쉬 하퍼, 닐 워드, 로라 진 마쉬

   사랑에 대한 부하들의 다른 시각이 리더쉽에 대한 도전으로도 드러난다.

   갈등하는 주인공

   또 후퇴하는 독일군들

   돌아갈 곳이 없는 지점까지 왔지만, 

   무능한 새로운 상관을 만나고, 이 상관은 명령에만 복종한다. 그래서 이 사선을 지키기로 한다.

   헤어져 멀리 도망가라고 했던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고,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살한다.

   영화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성을 잃어버린 전쟁터에서의 인간들을 통해서 인간의 사리사욕을 그려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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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디자인으로 밥을 먹고 살고 있는데, 그 때는 내가 이런 일로 밥을 먹고 살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저 취미생활로 그림이나 그리자라는 마음으로 중학교때 미술반으로 활동을 했다.

   그 중에 같은 동네로 퇴근?하는 3인방 동갑네가 있었는데... 한 명은 천모 친구이고 다른 친구는 정모 친구이다. 그 세 명중 한명은 지금도 연락이 되지만 나머지 한명은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유는 같은 동네라도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달랐다는 점 ... 훨씬 더 가까웠던 친구와는 집에도 가고 해서 왕래를 했지만, 그 친구는 조금 다른 방향에 살고 있었다.

   당시 연락이 안되던 그 정모 친구는 작은 키(정말 작았다. 1-3번 사이?)였지만 운동화도 높이 신고(내 기억에) 또 머리도 많이 신경을 써서(두발자유화? 들어는 보셨는지?) 세련된 얼굴 그리고 운동과 나름대로의 가오를 갖고 살고 있는 친구였다.

   사실 오랜만에 어떤 이유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었는데? M모 대학을 어딘가로 갔고 그 대학에서 좀 잘 노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친구가 신 문물을 경험하라고 데려갔던 곳이 피카델리 극장 1층에 있는 SM이라는 곳이 있었다. SM이라는 곳은 아래 처럼 레스토랑 이었지만 소위 뮤직비디오(당시엔 음악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이 흔치 않았다)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SM과 유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물론 SM는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지만..

 

   그 레스토랑에서 틀었던 노래가 바로 이 음악이었다.

[원곡]

 

[뮤직비디오]

   이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니 더더욱 마음이 아픈 곡이 되었다.

[라이브]

 

물론,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을 휩쓸고 다녔던 엄청났던 그룹이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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